시인일지(199)

시인일지(199)

현우철


시(詩)를
즐겁게 쓰면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려고
마음먹고 또 마음먹었는데

시는 갑자기 많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시인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

분명 시인이 무슨 말 실수를 했던 것 같다
분명 시인이 그를 화나게 했던 것 같다

마치 환각에 빠진 것처럼
시는 시인의 머리를 때리고 또 때리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뒤통수를 두들기듯 때리고 또 때리고

손톱으로 할퀴고 꼬집으며
인정사정없이 시인에게 상처를 낸다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아야, 어여가, 오요, 우유고
나냐, 너녀가, 노뇨, 누뉴다

메스껍게,
메스껍게,

그토록
아득히 끓어오르던 분노여,

시인의 삶을 움켜쥐고 뒤흔드는
어쩌면 너무나도 잔인한 시여,

침묵으로 조용히 일생을 숨어 지내다가
따사로운 한 줌 빛을 시인에게 내던지고 사라져버린

쓰라린 상처의 설움,
어쩌면 너무나도 혹독한 시여,

시인이 말장난 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시인이 말꼬리 잡는 것처럼 보였을까

마음껏
시인을 두들겨패고

속시원하니,
시여,

오늘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는 것은
시에게 그렇게 두들겨 맞고

그 두들겨 맞은 느낌을
시의 언어로 표현하는 거다

시인이 이렇게 살아 있으므로
아프면 아프다고 시를 써야겠다

시인이 정말 이렇게 살아 있으므로
미련이 남았다고 시를 써야겠다

죽었으면 이렇게
시를 쓰지도 못하겠지

그냥 정지해 있는 수평선 위에
멈추어 선 커다란 고민 덩어리 하나,

외로웠기에
시를 찾았던 것일까

익숙했기에
시를 찾았던 것일까

시를
밥 먹듯이 쓰면서

시인은 시의 자취를 남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깔의 숲속으로

까마득히 멀어지는
무지개, 하얀 구름, 파란 폭풍, 돛단배여,

밥 먹듯이
너를,

너를,
저 넓고 파란 하늘에 꼼꼼히 적는다

오,
시여……

(2009.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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